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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 밖에 서 계신 주님!
이름
임경근
등록일
2010-03-09

 

문 밖에 서 계신 주님!




임경근 목사 (2010년 3월 9일)




        사영리 혹은 전도폭발에 자주 등장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결신을 촉구하는 순간에 이 성경 구절을 애용한다. 전도를 받은 자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에 동의하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과 같다는 구절로 읽어준다.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구절로 쓰인다. 그런데 이 성경구절이 과연 불신자들의 마음 문을 열라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이 구절은 불신자가 아닌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하신 주님의 권면의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믿는 성도들에게 하신 주님의 설득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주님은 이 말씀을 하셨을까? 성도는 당연히 예수님을 문 밖에 두지 않고 문 안, 곧 집 안에 모시고 산다.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을 방 문 안에 모시지 않고 문 밖에 세워두었음에 틀림이 없다.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회개하라’(19절)고 경고한 것을 보면 분명히 예수님을 밖에 세워 두었음에 틀림이 없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왜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는 잘못을 했을까?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자.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 3:17)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없어도 스스로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일찍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상업과 산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을 가능성이 있다. 물질적으로 부요한 교회가 영적으로 가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성경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고 교회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에 만족했고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세속적 사회와 함께 살면서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대해서도 가볍게 생각했다. 그들의 삶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보다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삶을 살아갔음에 틀림이 없다. 주님이 볼 때에는 턱없이 부족한 함량미달의 삶을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지적한다.


“......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성경에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집 문 밖으로 밀어 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 없이 신앙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종교생활은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가짜이다.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을 때는 문제없는 삶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하면 엄청나게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외친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이 말은 무슨 말인가? 미지근한 삶을 살 바에야 아예 차가운 삶을 사는 불신자와 같이 되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과 함께 한 집에 살기 원하신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예수님을 문 밖으로 내 쫓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문 밖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향하여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고 계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문을 두드리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 말씀하신다. 차라리 네가 불신자였다면 내가 문 밖에 서서 문 열어달라고 이렇게 처절하게 외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을 열어 달라고 절규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권면인 것이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을 사랑한다(19절). 그래서 책망하시며 나무라신다. 더 나아가 열심을 내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신다. 구체적인 권면도 잊지 않으신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4:18)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모자란 것을 채워 넣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것을 권면하신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과 같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부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특별히 더 주의해야 한다. 교회 출석하고 헌금 꼬박꼬박 드리면서도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사는 성도들이 있을 수 있다.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예수님을 제외하고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한다면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신앙 생활하는 것일 수 있다. 부부관계, 자녀와의 관계, 자녀의 교육관, 성공관, 아동관, 가치관 등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는 관점이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일치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을 집 안에 모시고 사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매일 개인 기도생활과 큐티 생활을 해야 한다. 동시에 가정에서 가정예배 시간을 통해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하게 된다. 예수님을 우리 집의 식구로 간주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삶 바깥에 모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문 밖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계신 예수님에게 빨리 문을 열어 집으로 모시고 우리 삶에 들어와 영원히 사시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음 천국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세상이 주는 행복이 아닌 하늘이 주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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